경향신문_ 우리 가슴에 뚫린 구멍
얼마 전 복날이 지났다. 그날을 위해 태어나 한 달이 조금 넘게
살다 맛난 국물과 부드러운 살을 남기고 사라진 닭들이 있다. 아! 닭이
아니지. 그 병아리들은 기계에서 태어나, 폐쇄된 공간에서
햇빛 한줌 보지 못하고 제 수명의 200분의 1도 살지 못한
채 식탁에 올랐다. (만약 그 닭이 자연에서 태어나 제 수명을 채웠다면 무려 25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공장식 밀집사육, 항생제 과다투여, 건강하지 못한 고기 뭐 이런 소식을 들으면 무척
찜찜해 하다가도, 고소함에 길들여진 혀를 어떻게 바꾸지는 못한다.
경남 고성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목줄을 푼 진돗개가 달려 들어 사람을 문 사건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자 개 주인은 사고 2시간 만에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렸고, 경찰은 수소문 끝에 도살된 개(그러니까 개고기)를 찾아 광견병 검사를 의뢰했다. 애완견을 반려견이라 부르는 세상이라 해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애정을 주고 기르던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 도살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경남 고성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목줄을 푼 진돗개가 달려 들어 사람을 문 사건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자 개 주인은 사고 2시간 만에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렸고, 경찰은 수소문 끝에 도살된 개(그러니까 개고기)를 찾아 광견병 검사를 의뢰했다. 애완견을 반려견이라 부르는 세상이라 해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애정을 주고 기르던 개를 개장수에게 팔아 도살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경기도 용인의 사육장을 탈출한 반달곰 두 마리가 모두 사살되었다. 그런데
가슴엔 총알 구멍 말고도 이상한 흔적이 있었다. 곰 가슴에 생긴 저 흔적은 무엇일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 움푹 패인 흔적이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웅담)을 빼기 위한 구멍이란 걸 안다. 왜냐하면 이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니까.
불과 지난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뭐, 내일이 되어도 별반 달라질 건 없다. 사육장에서는 애완용도 아니고, 식용도 아닌 곰 가슴에 구멍을 내 쓸개즙을 뽑아낼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며 기르던 개도 때가 되면 도살되어 고기가 될 것이다. 제 수명의 200분의 1도 살지 못하는 병아리들이 단지 우리의 입맛과 단백질을 위해 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어디에서 생명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욕망에 충실한 괴물이 되어, 반달곰의 가슴에 구멍을 내고 쓸개즙을 뽑아낸다.
어디 반달곰 가슴뿐이랴. 반달곰 가슴에 뚫린 구멍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가슴의 구멍이다. 복잡하게 숫자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살기가 참 팍팍하다. 인간의 삶을 규정할 사랑, 자비, 희망 이런 단어는 내세에서나 가능한 종교적 구호가 되었고, 공정, 정의, 복지 같은 단어는 허망한 정치 슬로건으로만 남았다.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생명의 존엄을, 자존감을 지켜주지 못한다. 열 살짜리 여자 아이를 납치해 살해하고 스스로 목격자라 칭하며 인터뷰를 하는 이의 얼굴을 봐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뉴스에 놀라지 않을 내성을 지니기 위해 내 가슴에 난 구멍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임기 내내 ‘상왕’이라는 전근대적 표현으로 호칭된 대통령의 형이나, ‘멘토’라는 유행어로 포장된 측근이 모조리 감옥에 들어가는 꼴을 보면서 아이쿠! 저 도적놈들! 화병이 나기보다는 가슴에 구멍을 더 크게 만들어 흘려 보내야 한다. 커다란 구멍으로 휭, 바람이 지나가듯, 이런저런 소식에 가슴의 구멍은 조금씩 더 커진다.
우리는 가슴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나보다 약한 이들이나 소수자들을 찾아내 조롱하고, 증오하고, 분노한다. 놀이를 빼앗긴 어린이들,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 피곤한 노동에 내몰린 어른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장년들까지.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을 빼앗겨 가슴에 구멍 뚫린 우리는 타인의 존엄과 자존감을 깎아내어 구멍을 메우려 한다. 우린 모두 정상이 아니다.
모두들 이 상황이 비정상이고,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치유’다. 다만, 모두들 고침을 받고 싶어 할 뿐이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 봐야, 내 가슴의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다. 그저 치유 장수들의 배만 불린다. 내 가슴의 구멍은 내가 메워야 한다. 우리 함께 치유하자.
첫 번째. 내 가슴에 난 구멍을 바라보자. 내 가슴에 구멍이 나 있음을 인정하자. 위로나 치유의 말처럼 달콤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에 난 구멍은 날 괴롭게 한다. 그래도 인정하자. 두 번째, 내 쓸개즙에 박힌 고무관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확인하자. 나의 희생을 담보 삼아 쓸개즙을 빼는 이들이 누군가를, 확실하게 바라보자. 세 번째, 그들의 협박이나 사탕발림에 속지 말자. 이 학원이 아니면, 이 회사가 아니면, 이 프로젝트가 아니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고 소리치는 이들을 멀리하자. 좀 불안해도, 결별할 것과 결별하자. 당연히 쓸개즙에 박힌 관을 뽑아내면 쓰디쓴 쓸개즙이 흘러나올 것이다. 무척 아프겠지만, 헛된 욕망과 결별하고 내 진짜 욕망을 찾아보자. 그게 좀 쓸데없어 보이더라도, 괜찮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불과 지난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뭐, 내일이 되어도 별반 달라질 건 없다. 사육장에서는 애완용도 아니고, 식용도 아닌 곰 가슴에 구멍을 내 쓸개즙을 뽑아낼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며 기르던 개도 때가 되면 도살되어 고기가 될 것이다. 제 수명의 200분의 1도 살지 못하는 병아리들이 단지 우리의 입맛과 단백질을 위해 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어디에서 생명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욕망에 충실한 괴물이 되어, 반달곰의 가슴에 구멍을 내고 쓸개즙을 뽑아낸다.
어디 반달곰 가슴뿐이랴. 반달곰 가슴에 뚫린 구멍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가슴의 구멍이다. 복잡하게 숫자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살기가 참 팍팍하다. 인간의 삶을 규정할 사랑, 자비, 희망 이런 단어는 내세에서나 가능한 종교적 구호가 되었고, 공정, 정의, 복지 같은 단어는 허망한 정치 슬로건으로만 남았다.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생명의 존엄을, 자존감을 지켜주지 못한다. 열 살짜리 여자 아이를 납치해 살해하고 스스로 목격자라 칭하며 인터뷰를 하는 이의 얼굴을 봐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뉴스에 놀라지 않을 내성을 지니기 위해 내 가슴에 난 구멍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임기 내내 ‘상왕’이라는 전근대적 표현으로 호칭된 대통령의 형이나, ‘멘토’라는 유행어로 포장된 측근이 모조리 감옥에 들어가는 꼴을 보면서 아이쿠! 저 도적놈들! 화병이 나기보다는 가슴에 구멍을 더 크게 만들어 흘려 보내야 한다. 커다란 구멍으로 휭, 바람이 지나가듯, 이런저런 소식에 가슴의 구멍은 조금씩 더 커진다.
우리는 가슴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나보다 약한 이들이나 소수자들을 찾아내 조롱하고, 증오하고, 분노한다. 놀이를 빼앗긴 어린이들,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 피곤한 노동에 내몰린 어른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장년들까지.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을 빼앗겨 가슴에 구멍 뚫린 우리는 타인의 존엄과 자존감을 깎아내어 구멍을 메우려 한다. 우린 모두 정상이 아니다.
모두들 이 상황이 비정상이고,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치유’다. 다만, 모두들 고침을 받고 싶어 할 뿐이다. 아무리 손을 내밀어 봐야, 내 가슴의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다. 그저 치유 장수들의 배만 불린다. 내 가슴의 구멍은 내가 메워야 한다. 우리 함께 치유하자.
첫 번째. 내 가슴에 난 구멍을 바라보자. 내 가슴에 구멍이 나 있음을 인정하자. 위로나 치유의 말처럼 달콤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에 난 구멍은 날 괴롭게 한다. 그래도 인정하자. 두 번째, 내 쓸개즙에 박힌 고무관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확인하자. 나의 희생을 담보 삼아 쓸개즙을 빼는 이들이 누군가를, 확실하게 바라보자. 세 번째, 그들의 협박이나 사탕발림에 속지 말자. 이 학원이 아니면, 이 회사가 아니면, 이 프로젝트가 아니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고 소리치는 이들을 멀리하자. 좀 불안해도, 결별할 것과 결별하자. 당연히 쓸개즙에 박힌 관을 뽑아내면 쓰디쓴 쓸개즙이 흘러나올 것이다. 무척 아프겠지만, 헛된 욕망과 결별하고 내 진짜 욕망을 찾아보자. 그게 좀 쓸데없어 보이더라도, 괜찮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