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1일 토요일

성장 시대의 종언

[녹색평론]제 125호 7-8월호

 

성장시대의 종언 본문 中...


'이상을 결여한 정치’
문제를 들여다볼수록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게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건전한 정치적 이성(理性)이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의 뉴델리에 가면 간디의 묘가 있습니다. 그 비문에는 생전에 간디가 했던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세계에는 일곱 개의 큰 죄가 있다. 첫째, 이상을 결여한 정치. 둘째, 노동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부(wealth). 셋째, 양심에 어긋나는 쾌락. 넷째, 인격이 결여된 학문. 다섯째, 도덕성이 결여된 상업. 여섯째,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일곱째, 자기희생을 망각한 신앙.
이 일곱 개 항목이 다 중요하지만, 간디가 특히 정치를 제일 먼저 꼽았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정치가 잘못되면 모든 게 허사입니다. 간디는 그처럼 중요한 정치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요소가 ‘이상(理想)’이라고 본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는 현실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주의만이 전부라면 정치는 야바위꾼들의 권력쟁탈 이외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어쩌면 인류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지난 수백 년, 한국이라면 지난 몇십 년 동안,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연지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정치지도자들이 얼마나 정확히 꿰뚫고 있느냐 하는 것은 사활적인 중요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목은 대단히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타자―동시대의 사회적 약자와 자연 그리고 미래세대―에 대한 무관심 혹은 무책임한 태도를 기초로 해서 전개돼온 극히 비윤리적인 시스템이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안목입니다.

혹자는 근대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규탄할 수 있느냐, 근대문명 덕분에 많은 사람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도 갖게 되었고,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도 누리고, 높은 생활수준과 복지혜택도 누리면서 살게 되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지식인일수록, 고등교육 받은 사람일수록 그런 관념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근대문명이 계속돼온 세월 동안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인간들이 끝없이 학살을 당하거나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며 살아왔고, 그 상황은 지금도 변함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니까 지난 500년 동안에 자본주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물질적 혜택을 실제로 누렸던 사람의 수효는 지구 전체 인구 가운데 최대 15%를 넘어본 적이 없다는 통계가 나와있더군요. 그러니까 85% 이상의 인구는 항상 15% 이하 ‘특권층’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서 희생을 당하며 살아온 거죠. 이제는 마지막 국면이 되니까 그 15%에 속한 계층도 대부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1% 99%라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몰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병리적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은 미국이든 일본이든 서유럽이든 그동안 비교적 유복하게 살았던 사회들에서 거의 제3세계적인 양극화 현상, 대중적 빈곤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연간 자살자는 35,000명을 넘고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4,500만 명이 넘고, 2012 3월 현재 정부로부터 식비 보조(food stamp)를 받아야 하는 미국 시민의 수는 4,600만 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실업문제의 심각성은 선진국들의 공통 현상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민자 배척 운동이 소위 선진국들에서도 급속히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인종주의, 민족주의, 혈통주의가 쉽게 발호하는 법이지만, 최근에는 복지선진사회라고 하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의 퇴행이 시작된 거죠. 경제성장이 순조롭게 계속될 때에는 빵을 크게 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지켰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를 안정시키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을지, 정말로 지혜로운 정치가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될 엄중한 상황입니다. 그게 안되면, 파시즘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입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논의가 꽤 진전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일본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성장 없는 시대의 국가를 구상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책은 여러 사람들의 공동 저술인데, 편집자는 지금 일본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문제를 둘러싸고 가장 열렬히 반대논리를 펴고 있는 나가노 다케시(中野剛志)라는 경제학자입니다. 현재 교토대학 교수로 있는 이 나가노라는 사람은 원래 일본의 경제산업성에서 일하던 관료였습니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이라면 우리나라의 재정경제부와 지식경제부를 합친 곳이라고 할만합니다. 요컨대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정부의 핵심 부서인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아직 정부에서 일하던 수년 전에 몇몇 학자들과 경제산업성 간부들을 규합해서 연구회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벌써 1990년대 초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계속 저성장 내지 마이너스 성장 상태지만 여전히 국가정책은 성장 기조의 회복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성장경제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고, 그 대신 성장이 중단된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나갈지를 궁리하는 게 절박하다는 문제의식 밑에서 모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년 동안 열번 정도 세미나를 개최하여 활발한 토론을 거쳐서 세상에 공개한 것이 《성장 없는 시대의 국가를 구상한다》라는 책입니다. 제가 놀란 것은 이 책의 내용보다도 정부의 경제정책을 다루는 현직 고위 관료들이 그 세미나에 활발히 참여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 일본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그리 만만한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처하는 일본정부나 지도층의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자세를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책을 보면 또다른 일본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이미 중요한 선각자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지만, 원래 대장성(?) 관료를 지내다가 1960년대 전반 일본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을 체계화했다고 알려진 시모무라 오사무(下村治)라는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이케다(池田) 내각 때의 국민소득배증론(倍增論)이라는 것이 바로 시모무라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고도경제성장 국가의 핵심적 경제이론가였죠. 그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1차 석유위기를 겪고 난 뒤에는 완전히 자세를 바꿔서 성장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경제는 더이상 가능하지도 않은 성장을 계속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중지하고, 이제는 ‘축소균형’의 길로 가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했습니다. 그래서 식량과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농업을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런 선각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 일본의 경제학자들과 현역 경제관료들이 비록 일부지만 ‘성장 없는 시대’를 위한 대안적 비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불쑥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근 45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해

 정치, 사회, 윤리, 역사적인 시각에서 통찰력있게 설명해주고 있는 평론.

 대선을 앞둔 지금, '성장시대'에 먼저 용감하게 이별을 고하는
 용감한 정치가가 나오길 바라며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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